[인류의 미술 Chapter I.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13) BC. 1342 미술, 투탄카멘 Tutankhamen
[인류의 미술 Chapter I.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13) BC. 1342 미술, 투탄카멘 Tutankhamen
  • 조명계 용인대 교수
  • 승인 2019.07.2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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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 투탄카멘 황금 마스크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 투탄카멘 황금 마스크

파라오 Tutankhamen의 미라는 원래 사망 당시대로 옷을 벗고 짐승같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다. 붕대로 감은 미아리의 얼굴에 파라오 얼굴 모양대로 만들어져 씌워져 있었다. 

이집트 북부 및 남부 지역의 상징 독수리와 코브라로 구성된 왕관, 흔히 투탕카멘왕의 황금마스크로 알려진 어린나이로 숨진 소년왕으로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 왕 투탕카멘왕의 유물이다. 룩소르 왕들의 계곡의 무덤군에서 발견되었다. 

투탕카멘이 유명해진 것은 그가 생전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거나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1922년 왕들의 계곡에서 전혀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그의 무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왕의 장의용 황금마스크가 발견되었다. BC 14세기에 활동한 이집트의 왕(BC 1333~1323 재위)으로 1922년에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발굴된 무덤으로 유명하다. 

호렘헤브가 이끄는 이집트군이 이집트의 옛 동맹국인 시리아 북부의 미탄니 왕국을 돕기 위해 시리아로 진격했는데 미탄니 왕국은 히타이트 왕국의 봉신들과 전쟁에 휘말려 있었다. 히타이트 왕이 보낸 증원군이 봉신들을 돕기 위해 전쟁터로 가고 있을 때 투탕카멘은 18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식들은 모두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아이가 그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왕위를 이었다. 

투탕카멘이 죽은 후 왕의 미라는 작은 묘실 속에 안치된 3중 관 속에 누워 있었다. 가장 안에 있는 관은 순금으로 만들어졌고, 밖에 있는 2개의 관은 나무틀에 금을 망치로 두드려 박아넣은 것이었다. 

왕의 머리에는 찬란한 황금 가면이 씌워져 있었고, 수많은 보석과 부적이 미라 위와 그 미라를 휘감은 싸개 속에 놓여 있었다. 관과 관석은 글을 가득 적은 나무판에 금박을 입힌 4개의 제단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런 글은 사실상 묘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른 방들은 가구·조상·옷·전차·무기·지팡이와 그밖의 수많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무덤이 없었다면 투탕카멘은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무덤 덕분에 투탕카멘은 그보다 오래 살았거나 훌륭한 치적을 남긴 어떤 전임자나 후임자보다도 유명해졌다. (브리태니커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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