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중국 유학을 위한 전략 (下)
성공적인 중국 유학을 위한 전략 (下)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8.3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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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발 공부

다음으로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발 공부’를 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발 공부’가 더 많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교실이나 도서관에 앉아 손으로 써 가며 암기 위주로 하는 기존의 ‘손 공부’ 못지 않게 글로벌 세계를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보다 더 생생하게 느끼고 익히는 ‘발 공부’가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연필이 두 자루 닳았으면 신발은 세 켤레가 닳아야 하는 것이다.

발 공부에 대해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외국어 학습을 한 예로 들어 보자.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를 공부한다. 하지만 우리의 영어 구사 능력은 어떤가? 주로 교실에 앉아서 영어를 배우다 보니 영어를 읽고 쓰는 능력은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듣고 말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외국인을 만나 이야기하는데 “잠깐, 나는 말하고 듣기는 잘 못하니까 써 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를 고려하더라도 상하이에서 만큼은 발 공부를 위주로 해야 한다. 손 공부는 발 공부를 위한 보완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강의실이나 도서관에 너무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대신 상하이 곳곳을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나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다니며 가급적 더 많이 보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발 공부를 위주로 할 때 상하이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발 공부와 관련하여 L군의 사례는 아쉽기만 하다. 사실 L군은 그 자신이 특별히 못났거나 무능력해서 ‘덜 효율적’인 유학 생활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의 케이스는 우리 사회 제도권 교육의 학습 방법에 익숙한,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에게 공통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우리 청년들은 발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이를 행동으로 잘 옮기지 못한다. 아무래도 한국식 학습 방법, 즉 강의실과 도서관, 학원 등에서 책상과 더불어 하는 손 공부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L군 또한 바로 이런 손 공부 학습의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L군도 발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된 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개별 상담 자리에서 그는 “너무 불안하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자신은 발 공부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함께 온 다른 한국 학생들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강의가 끝나면 주로 도서관이나 자습실에 모여 손 공부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대학문을 박차고 나가 과감하게 발 공부를 실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으니 너무 혼란스럽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오랜 관행을 깨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아무리 격려하고 잘 이끌어 주어도 이를 극복해 내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L군은 머릿속으로는 발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손 공부에만 주력하는 한국 유학생들에 대해 ‘강남 스타일’에 빗대 ‘한국 스타일 공부(Korean style study)’라며 풍자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공부에 여념이 없는 다른 한국 학생들을 보며 결국 오랜 관행의 벽을 넘지 못했다.결국 L군도 다른 한국 학생들처럼 “HSK 급수를 따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암기할 필요도 있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대며 다시 손 공부의 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에 비해 S군은 발 공부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파견 학기의 형태로 한 학기를 상하이에서 지냈다. 그는 ‘발 공부’에 대한 필자의 강의가 끝난 뒤 바로 상담을 청해 왔다. 그리고는 졸업 후에 여행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자신의 희망을 들려주며 이를 위해 상하이에 있는 동안 어떤 식으로 어떻게 발 공부를 해야 할지 문의하였다. 이에 “먼저 ‘상하이 전문가’가 돼라. 상하이를 알면 중국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했다. 한국에서는 ‘상하이’하면 여전히 푸동이나와이탄 등의 초고층 빌딩만 떠올린다. 하지만 그래서는 ‘중국의 미래’이며 ‘21세기 최고의 도시’라 일컬어지는 상하이의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없다.

그 이후에도 그는 가끔 필자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의 행적을 들려주고 그 과정에서 궁금했던 사항이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들을 묻곤 했다. 그의 눈동자는 매우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의 S군은 외향적이거나 진취적인 타입의 청년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졌으며 그 자신 또한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성공적인 유학의 전형적인 선순환을 그려 가고 있었다.

그러다 한 학기 동안의 파견 학기가 끝날 즈음에는 “아무래도 한 학기로는 부족한 것 같다”며 이번에는 한 학기를 휴학하고 상하이에 남았고, 더 분주히 상하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복학하고 얼마 안 있어 맞이한 졸업 즈음에 그는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한국에서 가장 큰 여행사에 취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쁜 마음에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하고 싶어 전화했다는 그는, 상하이에서의 발 공부 결과 얻게 된 많은 성취들이 취업에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발 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워 줘서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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