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스승이다
사람은 스승이다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8.1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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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나는 평소에 자아를 발견하는 방법 중 하나로 여행을 곧잘 권한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면 그동안 자신이 머물렀던 곳이 더 잘 보이고, 안주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할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낯선 세계로의 탐험은 젊음의 특권이기도 하다.

여행에는 돈과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딱 한 가지 돈이 안 드는 여행이 있다. 바로 ‘사람으로의 여행’이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 여정을 나는 그렇게 부른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또 하나의 우주이자 멋진 신세계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고, 타인의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이처럼 삶에 활기를 더해주는 사람으로의 여행을 일상화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은 곧 인생의 스승이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게는 사람으로의 여행 파트너가 적지 않았다. 그중 한 명인 J군을 먼저 소개할까 한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를 나와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큰물에서 놀라’는 선임병의 조언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 그의 첫 인상은 다소 부담스러웠다. 거침없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태도와 도깨비 탈을 연상시키는 험상궂은 인상 때문이었다.

날카롭게 치솟은 눈썹, 부리부리한 코, 나름 우호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 지어 보이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 그런데 그는 내 마음과 달리 나를 무척 친숙하게 대했다. 불쑥불쑥 사무실을 찾아와서는 별다른 용건도 없이 혼자 횡설수설하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다 말고 “아무튼 앞으로 잘 가르쳐주세요” 하고는 돌아가는 식이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거는 그의 태도에 내 쪽에서도 점차 그를 친숙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내가 외모로 인한 선입견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진솔하게 호의적인 그의 태도가 나의 선입견을 금세 허물어뜨린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지인에게 소개받은 사람에게도 늘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곤 했다. 친숙하고 사교적인 성격이 매력인 그에게는 다소 험상궂은 외모도 흠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의 외모에 어울리는 귀여운 애칭을 붙여 친숙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또 다른 파트너인 일본인 다카하시 군을 소개한다. 다카하시 군은 내가 일본 유학 중에 설립한 소규모 NGO 단체 ‘한일아시아기금’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처음 만났다. 그는 앞서 이야기한 J군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처음 만날 당시 그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는데, 겸손하고 이해심이 넓은 데다 상당히 박학다식해서 도저히 그 나이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역시 사람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것을 매우 즐거워했다. 단순히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과는 달랐다. 그는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렸다. 또래인 10대는 물론이거니와 삼촌뻘인 30대를 거쳐 부모 세대인 4-50대, 심지어 조부모 격인 6-70대 사람들에게도 격의 없이 다가가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아나갔다.

타고난 친화력은 넓은 인맥으로 이어졌고, 대학 입학 후 젊은 나이에 한일아시아기금 일본 사무국의 사무국장 자리에 앉았다. 당시 그의 활약으로 한일아시아기금은 2004년에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정식 NGO로, 2005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 NPO로 승인 받았다.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과 기부금을 납부하는 회원들이 모인 연차 총회에서 그 어린 나이에 국장으로 선출된 것은 세대를 초월한 그의 인맥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에게 사람들과 쉽게 융화되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크고 작은 오해를 겪을까 봐 두려워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불안해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똑같다. J군과 다카하시 군은 이러한 장애물을 힘겹게 뛰어넘은 사람이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인격도 연마해갈 수 있었다.

J군의 경우 과거에는 우락부락한 인상 때문에 사람을 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다카하시 군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과거에 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었다는 얘기를 그의 아버지로부터 들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현재 성격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모난 돌 같은 자신의 성격을 갈고닦아 매끈한 조약돌로 만들었고,그 과정에서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사회에서 자신과 맞는 사람하고만 지낸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조금 맞지 않는 사람과도 대화를 해보고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신의 성격과 인격도 자연히 다듬어지게 마련이다. 매일 매일 다양한 연령,다양한 배경,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보자.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해와 갈등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미리 인정해두자. 20여 년 혹은 3-40년 넘게 길러온 서로 다른 인격이 만날 때 생기는 시너지는 혼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실수를 연발하거나 의도치 않은 행동으로 오해를 사고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그 자체가 배움과 성장의 한 과정이고,이 모든 시행착오가 ‘더 나은 나’로 거듭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기억하라. 실수와 시행착오는 그대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성공이 있다면, 그것은 실패가 예고된 성공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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