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국기와 국가
한·중·일의 국기와 국가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6.1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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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일반적으로 오성홍기五星紅旗라 일컬어지는 중국 국기는 왼쪽에 있는 큰 별 하나(중국 공산당을 상징)와 오른쪽의 작은 별 네 개(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네 계급, 즉 노동자 계급, 농민 계급, 도시소자산 계급, 민족자산 계급을 상징)가 중국 공산당의 영도하에 연안해안을 따라 단결하여 모여 있는 형상을 띠고 있다.

오성홍기가 붉은 바탕을 띠는 이유는 혁명과 사상의 순수함, 그리고 중국 민족이 특히 붉은 색을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라고 한다. 또한 별이 황색인 이유는 중국인이 아시아 인종(즉 황색 피부)임과 더불어 중국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황하 문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 국가는 <의용군행진공義勇軍行進曲>이라 불리는데 이것은 원래 1935년에 상영된 영화 <풍운 속의 자녀風雲兒女>의 주제가였다 .하지만 “노비가 되고 싶지 않은 자들은 일어나라!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신세계를 건설해 나가자! 일어나라! 일어나라! 전진하자! 전진하고 또 전진하자!”는 가사와 그 늠름한 곡조로 인해 당시 항일투쟁에 나선 중국인들의 불굴의 정신과 용맹함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과 더불어 국가로 지정되었다.

그러다가 이후의 문화대혁명 당시 이 <의용군행진곡>은 <마오쩌둥 찬가>를 개조한 새로운 국가로 대체되며 연주가 금지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이후인 1982년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다시 국가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한편 이러한 국기와 국가에 대한 중국인들의 태도는 대부분의 경우 ‘충실함’ 그 자체로 일관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특히 마오쩌둥 이후 사회주의 교육을 받아 온 젊은 세대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 같다. 실제로 최고 교육 기관인 중국의 각 대학에도 ‘공산청년단’ 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곳의 ‘청년단 위원회’ 등에서는 사상 교육을 주관하며 이를 통해 특히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국, 애족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내가 예전에 소속된 대학에도 물론 이와 같은 기관이 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한 발랄하고 다소 수다스러운 30대 초반의 중국인 여교수의 주요 업무가 바로 이 ‘사상 교육’ 담당이었다. 실제로 평상시의 그녀 모습에서는 연상하기 힘든 상반된 이미지이긴 한데,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은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왠지 무서운 그녀와 약간 거리를 두려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쑥스럽기도 하였다.

여하튼 중국 사회에서의 국가와 국기에 대한 열렬한 감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통제 불능의 민족주의로 번질 수 있을 것 같아 우려되기도 한다. 실제로 개인주의가 몸에 밴 중국 사회이지만 국제 스포츠 행사의 응원 등을 통해 가끔 드러나듯 중국이라는 ‘국가’나 중화라는 ‘민족’ 앞에서는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을 거칠게 분출하곤 한다.

경제 등의 발전과 더불어 개인의 자유가 더욱 신장되면 대부분의 경우 국가의 국민에 대한 통제력이 느슨하게 되는 법이다. 그때 오성홍기를 흔들며 ‘쫑후워中華!’ 를 부르짖는 중국인들을 상상해 보라.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중국인이 얼마나 많은가! 난 아직도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서도 가끔씩 “와! 중국인들, 정말 많다!” 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5,000년 문화 전통을 지닌 중국인들의 양식과 냉정함에 기대해 보지만 아무튼 이웃한 우리도 이에 대한 몇 개의 가상 시나리오 등을 미리 갖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에 비해 일본인들의 국기·국가에 대한 태도는 어떨까? 다원화된 민주 사회 일본,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진행된 개인주의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진 현재의 일본 사회에서 이에 대한 시각을 일반화 시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현재의 일본에는 국기나 국가에 관한 일반적인 교육을 받아 온 한국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 연출되곤 한다.

일본 사회는 아직도 그들이 저지른 과거가 버겁다. 과거는 비단 일본의 대외 관계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타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복잡한 양상을 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빼놓을 수 없는 한 예가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바 있는 국기와 국가 문제이다.

과거 침략전쟁을 일으킨 ‘대일본제국’의 상징인 히노마루(일장기)와 그 국가였던 기미가요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난 일본국의 상징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 국가 제창이나 기립 등을 강요하는 것 역시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발하기도 한다. 반면에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애국·애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일본의 국기와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일본 사회는 국기와 국가를 두고 양분되어 논쟁 중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1999년 이른바 ‘국기법과국가법’을 시행하여 졸업식이나 입학식 등 주요 행사 때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 열도의 졸업식이나 입학식 시즌에 국기 게양이나 국가 제창을 둘러싼 대립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2004년에도 이와 관련한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의 한 학교 교장이 부임한 뒤 얼마 안 되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는데 그 원인은 교직원과의 알력 때문이었다. 애국·애족을 강조하려는 일본 정부의 방침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교장인 그는 일본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제창하는 애국 교육을 강요해야 했다. 그런데 청·장년층의 일선 교사들이 이를 따르지 않아 결국 교장이 밤에 몰래 일장기를 게양한 뒤 돌아가면 이튿날 새벽 교사들이 이를 다시 내려 없애 버리는 일을 반복하였다. 이를 둘러싼 알력과 충돌이 계속되다가 결국 교장이 자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현재 국기와 국가를 둘러싼 일본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는 아직도 ‘보통의’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것이 무고한 인명을 앗아 가는 사태로 빚어지는 등 스스로 초래한 과거의 버거움에 깊게 짓눌린 채 고통 받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죄과일 수도 있고 그 패배로 인한 후유증일 수도 있는 일본 사회의 국기와 국가관에 대한 대립을 보자. 그리고 “국기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미국과 전쟁하여 패배하면 미국 국적을 가질 수 있으니까 좋은 것 아닌가?”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일본 사람들을 보자. 이에 비해 중국처럼 그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모든 것이 너무도 달라 어떻게든지 하나로 살아 나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불가침적 존재인 양 신성시되고 있는 그들의 국기와 국가를 보자.

중국의 경우 너무 배타적으로 자국만을 주장하는 것도 위험하다. 하지만 일본처럼 국기나 국가가 없으면 국제 사회에서 ‘나와 우리’가 ‘나와 우리’ 일 수 있도록 알리며 또 지켜 줄 수 있는 상징이요, 보호막이 사라지게 되는 위험도 있다. 이처럼 철저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두 나라의 경우 모두 ‘위험하다.’는 공통된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우리의 국기와 국가에 관한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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