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과 리더십 (下)
한·중·일과 리더십 (下)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6.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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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이에 반해 우리 한국에는 국민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별로 없는 우리 현실이 서글프다. 일부 한국 의원들의 언행을 보면 지역 유권자들에게 대표성을 부여 받은 동료의원에게 반말과 삿대질을 예사로이 하고, 상대방에 대한 무례와 안하무인격 추궁을 정당하다는 듯 하는 구태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다.

멀쩡하던 사람도 국회만 들어가면 그렇게 된다. (이러한 점을 보면 한국 국회의 영향력이 대단하기는 하다.) 오죽하면 국회가 ‘깡패 집단’인 것 같다는 평가까지 흘러나올까. 철저한 자업자득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회의 성원들은 자기성찰보다는 오히려 상대를 면박하고 국회 모독을 운운한다. 이를 두고 후안무치라고 하는 것은 아닐지……

한국의 의원들이 이렇듯 의원으로서의 권위만을 중요하게 의식하고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권위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다운 권위란 그 자신의 언행을 주위에서 평가받으며 그로 인한 존경 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추구해야 할 권위는 바로 이러한 참다운 권위이여야 한다. “뭔가 해 보이겠다.” “멋지게 튀어 보겠다.”는 저급한 생각만 앞섰지, 준비해 준 자료에서 한순간도 눈길을 떼지 못하며 읽어 나가기만 하는 행동이나, 실력보다는 고성방가로 일관해 대는 모습을 결코 권위가 될 수는 없다.

의원 외교하며 잘만 나가는 외유에서는 대체 뭘 하는건지, 어찌 하면 이웃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과 이렇게나 다를 수 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 또한 우리 한국 유권자들의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자질 부족한 이들에게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 주었으니 말이다. 다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이번에는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알아보자. 일본의 국회는 국가 권력의 최고 기관임과 동시에 유일한 입법 기관이기도 하다. 그 보유 권한으로는 헌법 개정 발의권, 예산안 결의권,조약 승인권 및 내각총리 대신 지명권 등이 있다. 일본 국회는 중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으로 되어 있다. 중의원 임기는 4년이지만 임기 만료 전에 중의원이 해산되면 임기는 그 시점에서 종료된다. 임기가 6년인 참의원은 3년마다 정원의 반수에 대한 선거가 이뤄진다.

그 권한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먼저 중의원을 살펴보자.중의원은 내각이 작성하고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대해 우선적인 심의권을 지닌다. 또한 신임 수상의 지명과 조약 체결에 관한 심의권도 참의원보다 우선한다. 아울러 중의원은 내각 불신임안과 신임 동의안에 대한 권한을 지니는데, 이는 중의원이 지닌 가장 막강한 권한이라 평가된다. 이에 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선출하여 국회의 전문성을 보완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구성된 참의원은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 제출권이 없으며 기타의 권한도 중의원에 뒤진다.

바로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일본 일각에서는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는’ 참의원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참의원은 중의원의 해산 상태에서 내각이 긴급회의를 요청할 시, 그 회기 중에 한하여 중의원을 대신해서 국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1억 3,000만 명에 육박하는 일본 인구 중에 800명에도 못 미치는 일본의 국회의원들의 권한이 실로 이토록 막강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겸허하고 또 조심스럽다.대정부 질문이나 국정감사에 임하는 일본 의원들의 모습 속에서는 준비한 자료와 질문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며 출석한 응답자들의 응답을 차분하게 경청하는 양보의 모습이 돋보인다. 이렇게 스스로 낮추며 역지사지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오히려 엄중한 권위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간혹 그중에는 닳고 닳은 노회한 한량이나 정치꾼들도 없지 않다. 정치 지도자의 자리를 사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국민을 우롱하는 일본 정계의 이단자 또한 심심찮게 출몰하기도 한다.

한·중·일의 리더십과 관련,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다름아닌, 기존 질서에 대한 ‘인정’이나 ‘선험자’에 대한 존경이라는 부분이 그것이다. 한국의 정계에는 자신을 세우거나 한 자리 하기 위해 선후배나 동료, 심지어는 현재 그 직위에 있는 사람까지도 마구 폄하하며 부정하는 아주 잔인하고, 유치하며, 치졸한 전통 아닌 전통이 있다. ‘누워서 침 뱉기’ 격이라 아니할 수 없는데, 이와 관련 먼저 이웃 중국의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를 한 예로 들어보자. 10여 년간 중국 사회를 암흑기로 몰아넣으며 엄청난 후퇴를 초래한 문화대혁명의 장본인인 마오쩌둥에 대해서 중국은 말년의 ‘실수’는 인정했지만 그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나 부정은 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숱한 비리와 함께해 온 자민당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개혁은 부패 자민당의 개혁에서 비롯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수상 선거에 도전했던 고이즈미 일본 총리다. 하지만 집권 이후에도 그는 기존의 자민당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진행해 오지 않았던가. 선배 정치인들이 닦아 온 모습을 있었던 그대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더 나은 점을 찾아 개선해 나가려는 모습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민당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과 일본의 정계에서는 ‘선배’들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자신들을 세워 나간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정계 모습은 어떤가? 만약 마오쩌둥이 한국의 정치가였다면 ‘말년의 실수가 조금 있었다.’라는 정도로 끝났을까? 아울러 한국의 정당은 정권이 바뀌면 바로 간판을 내리곤 한다.

이처럼 외국의 정당에 비해 한국 정당의 생명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짧다는 점도 이전 선배의 궤적을 지우고 ‘잘난’ 내 자신을 새롭게 세워 보려는 치졸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신 선배 정치인을 상대로 한번 튀어 보겠다는 일념 하나에 ‘치매’ 운운하며 깔아 내리는 것 또한 선배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세우려는 몹쓸 정치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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