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의 역사 교육과 감정싸움 (下)
중국과 일본의 역사 교육과 감정싸움 (下)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3.0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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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내가 일본에 거주할 당시 한·일 관계에서 가장 우려했던 것 중 하나는 청산되지 못한 양국 간의 과거 때문에 양국 국민 사이의 괴리가 심화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비록 한류 등의 영향으로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간극이 한순간에 해소될 리는 만무하다. 한때는 일본 거주 외국인 가운데 오로지 ‘한국인’ 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경계하고 거리를 두려던 일본인들 때문에 양국 간의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한·일 양국 국민 간의 간극이 중·일 간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피부로 느껴지는 양국 국민들의 심정적 괴리는 한·일 간의 그것보다 그 정도가 훨씬 심한 듯하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의 대한관對韓觀과 대중관對中觀의 차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일본의 많은 여론조사에서도 이미 드러났듯이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국가는 중국’이라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러한 경색된 분위기는 비단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한반도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한편 중국과 일본의 역사 교육과 관련, 우리도 이들과 전적으로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 가운데, 특히 근대사나 현대사 초창기 부분의 국제 관계에 대한 일본의 사관을 ‘시치미’ 사관, ‘능청’ 사관이요, 중국의 그것을 ‘대국’ 사관, ‘격동’ 사관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사관은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지 여러분에게 한번 묻고 싶다. ‘한恨’ 사관, ‘저항抵抗’ 사관이라 함은 어떨까? 여기서 우리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중국으로부터 시달림 당하고 일본의 침략에 의해 식민지가 된 것이 전적으로 그들의 못된 야욕 때문만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응어리와 울분,분노만 불러일으키는, 내적 원인 규명과 반성보다는 외부 책임으로 전가하는 책임 회피적 사관 또한 어떠한 의미에서는 왜곡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이전에 무수한 역사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 그리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당대에 그렇게 고민했고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오늘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역사라 칭하는 것은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이었고 행동이었으며 삶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에게 곰곰이 되물어 보자.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과연 어떠한 상황에 있던 누구에 의해 쓰인 역사일까?’ 정사正史라고 하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정사이며 그 내용 또한 과연 얼마나 진실한 사실을 담고 있을까?

나는 ‘우수근’이다. 하지만 500년 후 나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 ‘김수근’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의심 없이 정사라고 한다면 나는 무엇인가? 얼마 후 나에 대한 기록이 또다시 몇 개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수근’과 ‘닭수근’이라고 쓰인 기록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과연 무엇이 되는가? 이렇듯 오랜 역사에는 입증 문제와 신뢰도 문제가 따라다닌다. 따라서 피아가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너무 내 것만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편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양측 모두 내 것만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 것은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찾아내는 것과 이에 대한 검증 작업은 실제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열린 자세로 ‘사실’ 추구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누가 뭐래도 나는 ‘우수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다면성을 지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웃는 자는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그들의 입장에서 각색하고, 우는 자 또한 동일한 사실에 대해 그들의 입장을 항변하며 강조하는 식으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기술하면서 상당히 애를 먹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해서 역사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법과 시각, 그리고 상이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고 터무니없는 왜곡이 아닌 한 ‘이질적 견해’의 존재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역사적 사실에 대해 조목조목 적확히 분석하고 반론을 제기하며 논리와 이성을 근간으로 상대를 압도해 나가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우리 외교가 다른 나라의 외교 관계에 있어서 뒷북을 치며 당하는 안타까움은 이제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로 인해 선량한 우리 국민들이 울분과 분노를 토해내고 이를 외국에서는 비웃는듯 바라보는 구조가 이제는 정말 그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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