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의 역사 교육과 감정싸움 (上)
중국과 일본의 역사 교육과 감정싸움 (上)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2.2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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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한·중·일은 근현대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난함과 동시에 역사를 바로 알아야만 비극이 재현되지 않는다며 일본에 의해 더렵혀졌던 과거를 교육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어물거린 채 중국의 역사 교육이 지나치게 반일 교육을 고양시키고 있다며 비난한다.

자신들의 입맛만을 한껏 강조해 온 중국과 일본 양국의 역사 교육은 급기야는 양국 정부를 곤욕스럽게 하기에 이르렀다. 지나치게 자국에 우호적으로 치우친 역사 교육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양국의 역사 교육과 그 결과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 교육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면서도 UN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일본 정부의 이와 같은 한심한 행태에 대해서는 일본 국민들도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 아직 그만큼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일본 사회는 그들의 조부모 혹은 부모가 저지른 과거를 둘러싸고 사회가 양분된 채 치열한 대립을 전개하고 있다. 이렇듯 과거라는 망령은 일본 열도를 아직도 뒤흔들고 있으니 과거를 둘러싼 일본 사회의 갈등 중 대표적인 두 가지를 알아보자.

하나는 앞서 살펴본 일본의 국가와 국기를 둘러싼 일본 국내에서의 대립이다.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국의 국기에 경의와 충성을 맹세하며 국가를 제창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데 비해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상식이 아직까지 통하지 못하고 있다. 기미가요와 히노마루가 어떻게 일본의 국가이며 국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의견이 그 반대 의견과 대립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일본에서는 무고한 인명을 앗아가는 사태로 빚어지고 있을 정도로 일본 열도는 아직까지도 그들이 초래한 과거의 굴레 때문에 버거워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다. 고이즈미, 아베 전 수상은 야스쿠니 참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이 있음에도 강행해 왔다. 이에 일본의 우익 보수 대변지 역할을 자처하는 <산케이신문>, <요미우리 신문>은 총리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를 지지하는 사설을 내보내고 있지만, 일본 사회의 유력지인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니혼게이자이 신문>등은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사설을 게재하며 비난하는 형국이다.

이와 같이 일본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7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자신들이 청산하지 않은 그 과거의 버거움에 의해 사회가 양분된 채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의 나가다쵸永田町(일본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으로 일본의 국회를 통칭함. 우리의 ‘여의도’라는 통칭과 유사)는 아직도 구태의연 하기만 하다.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말이다. 일본 국민들조차 신뢰하지 않으며 저항하는, ‘그들의, 그들만을 위한, 그들에 의한’ 가공된 역사를 교육시키려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일본은 아직 멀었다. 구태의연한 정치꾼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일본은 언제까지고 과거에 짓눌려 대외적으로 고통 받을 수 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열도가 심각하게 분열된 대립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중국의 역사 교육은 어떨까? 일본에 의해 굴욕적으로 점철된 과거에 관한 교육은 중국인 스스로 인정하듯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이에 대해 공산당의 대국민 장악력 강화 차원에서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자 하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털어놓는 중국인 학자도 있다. 그 외부 타깃의 전면에는 일본이 놓여져 있다. 이 점만 보더라도 중국 내 반일 감정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 이름 중 오로지 일본에만 꾸이쯔鬼子(‘놈’이라는 뜻)을 붙여 거의 반사적으로 일본을 르뻔꾸이쯔日本鬼子(일본 놈)라고 부르고 있다.

한편 나는 중국인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통제력 약화가 향후 중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이미 사회의 주류로 부상하여 활약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중국인들을 보면 중국의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중화 민족주의’가 연상되어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은 이렇게 교육시켜 온 중국 정부도 이들로 인해 종종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키운 맹수 새끼에게 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서 ‘계획생육計劃生育’이라는 산아 제한 정책이 시작된 것은 1978년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1970년대 출생은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세대에 속하는 ‘한 자녀 갖기’가 시행되기 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기존의 ‘중국인다운’ 중국인과는 여러모로 뚜렷이 구분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이들은 오늘의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오늘날의 중국을 규정짓고 있는 문화대혁명과도 무관하거나, 아직 태어나기 전 혹은 아주 어렸을 때 마오쩌둥이 사망했고 혁명의 소용돌이도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흔히 머릿속에 연상하는 경직된 중국과는 거리가 먼 덩샤오핑의 탈이념 실용주의 노선 시기에 태어났거나 성장한 첫 성인 세대이다. 좀더 달리 표현하자면 서방 자본주의 환경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출생하고 성장해 온 우리와 많은 점에서 유사한 새로운 중국인 세대이다.

따라서 이들의 언행은 이전의 중국인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집단의식, 검소함, 자족 등과 같은 기존의 중국적 사회 관념이 더 이상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 예로, 부모 세대들은 없는 살림 아껴 가며 한푼 두푼 저축으로 일관해 왔지만 이들은 없는 돈은 대출하고, 카드를 긁어 가며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취미활동을 위해 거리낌 없이 큰 돈을 지출하는 등 철저히 개인적인 삶을 향유하고 있다.

이러한 이들이 현재 중국 사회의 핵심 소비 계층으로 불리면서 ‘바이링白領(화이트칼라)’, ‘구깐骨干(핵심 인원)’, ‘찡잉精英(엘리트)’ 등의 위치를 속속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머릿속에서 그려져 나오는 모습이 중국의 미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유추할 수 있듯 오늘을 살아가는 중국의 세대 간에는 정신적 ‘단절’이 심각하다. 이는 일본의 전전戰前, 전후戰后 세대 간의 정신적 단절 못지않다.

※이어서 다음 주에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교육과 감정싸움 (中)’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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