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거주 문화
한·중·일의 거주 문화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1.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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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온돌, 다다미, 석재”

한·중·일의 일반 거주지, 즉 집을 연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낱말들이다. 3국의 사람들은 이들 집에서 삶에 지친 심신을 달래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일본 집의 특징으로는 다다미를 들 수 있다. 다다미는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우리의 두꺼운 돗자리 비슷한 것으로 방바닥에 까는 것을 지칭한다. 다다미의 판은 짚을 겹쳐 놓고 삼실로 꿰맨 형식을 띠고 있다. 1장의 두께는 4.5~6센티미터, 크기는 일반적으로 180X90센티미터, 무게는 17~30킬로그램 정도다.

일본의 전통적인 집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다미가 깔려 있다. 그러나 현대화된 지금의 일본 주택이나 아파트 등에서는 다다미가 쉽게 눈에 띄질 않는다. ‘근대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밀려 일본의 집에서 다다미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면면히 이어져 온 다다미와의 인연은 쉽사리 단절될 수 없는 듯하다.

다다미에서 생활해 보지 못한 일본인조차 “한여름 밤 ,머리 위에서 솔솔 풍겨 오는 다다미 특유의 짚 냄새를 맡노라면 할머니의 아늑한 품이 떠올라 포근하게 잠들게 된다.” 거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은은하게 맞아 주는 다다미의 정겨운 모습과 그 향은 삶의 고단함을 씻어 준다.”며 다다미 예찬을 펼칠 정도니 말이다. 그만큼 다다미는 실로 일본인의 마음속에 함께하고 있다. 

일본 집은 공간의 협소함을 특징으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도 이미 ‘토끼집(우사기고야)’이라 잘 알려진 일본의 집은 매우 좁다. 지진 등의 자연 재해가 많아 아파트와 같은 고층 빌딩과는 인연이 별로 없는 일본이다. 그 결과 국민 1인당 차지할 수 있는 거주 면적이 협소하여 일본 집은 가격에 비해 그 거주 공간이 좁을 수 밖에 없다.

대도시권에 사는 4인 가족의 경우,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20평 정도의 방3칸에 식탁과 의자, 간이 소파 등이 겨우 놓일 만한 주방 겸 거실에 사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니 도쿄와 인접한 한 중급 규모의 도시에는 자녀가 3명인데 거주 공간이 너무 협소한 탓에 자녀 중 한 명을 근처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자도록 하는 현상도 집어진다.

또한 일본에는 우리의 전세 개념이 없다. 따라서 자기 집이 아닌 경우 대부분 월세를 지급하게 된다. 그런데 그 월세란 것이 다른 물가에 비해 훨씬 비싸다. 일본 대도시의 물가는 부동의 세계 최고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중에서도 일반인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집세(교통비와 더불어)가 그 수위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에 따라 일반 서민들은 부부가 맞벌이를 하여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고스란히 떼어 주어야 한다. 그러니 그들의 일상적인 경제 수준이 과연 어떻겠는가. 일본 사회에서 일상으로 굳어진 ‘와리깡(더치페이)’이나 일본의 많은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지참하는 모습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아울러 ‘일본이 과연 선진국인가?’라는 성토도 동일한 맥락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진국이라면 적어도 기본적 의식주에 고통을 느끼거나 불편함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본인들은 30대의 젊은 한국인들이 25평이나 30평 이상 되는 ‘넓은’ 공간(비록 전세일지라도)에서 사는 것을 보고 복잡한 심경에 잠기게 된다. 그런데 그 복잡한 심경 속에는 간혹 그 한국인 지인에 대한 의구심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을 보니 혹시 직장에서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았나 의심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국의 집을 보자. 먼저 이와 관련하여 14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대륙이 크기는 하지만 사막과 산악 지대 등을 제외한, 실제 거주가 가능한 공간을 생각하면 중국인의 거주 공간도 한국만큼 ‘넓지 못할’ 것임은 쉽사리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실제와도 다르지 않다. 적어도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말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중국 대도시민부터 거주 공간을 멋지게 바꾸었다. 조그만 골목을 중심으로 오밀조밀 다닥다닥 붙어 지내던 중국인들이 높게 뻗은 큼지막한 신축 아파트 등으로 거주 공간을 옮기며 경제 발전의 과실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현재 한창 재건축이니 리모델링이니 하며 오래된 아파트 등을 개조하고 있다. 새롭게 선보이는 이들 건축물들은 기존의 일률적이고 밋밋한 회색 공간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나름대로 멋진 외관으로 재등장하고 있는데, 그래도 아직은 중국의 그것들과는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중국의 아파트나 빌딩 등의 외관은 그야말로 자기들만의 개성을 한껏 뽐내기라도 하는 듯 저마다 다른 모습과 특징으로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자동차를 타고 중국 대도시의 고가도로를 달리다 보면 “아,이것이 아파트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사무용 빌딩에 이러한 발상도 가능하구나!” 하며 적잖은 부러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문외한의 피상적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관만큼은 우리가 중국의 그 다양하고 멋들어진 발상에서 한수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멋진 자태를 뽐내는 이들 건축물들도 그 내부 시설이나 처리 등을 보면, 반대로 중국이 가야 할 머나먼 길이 느껴지기도 한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만큼 건물 외관과 내부 사이에는 ‘괴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대충 때우기, 각종 부패와 연관된 부실 공사 등 예전에 비해 지금은 나아졌지만, 그래도 잊을만하면 다시 이와 같은 이슈들이 붉어지고 있다.

중국의 집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온돌이 없다. 중국에서는 석재나 목재로 된 바닥이 일반적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고급 대리석 등을 사용하여 방바닥을 멋지게 꾸민 집들이 많은데, 고급 석재로 장식된 방바닥이라 확실히 보기에는 고급스럽겠지만 썩 실용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따뜻한 방에서 하룻밤 몸을 지지며 기력을 충전하는 온돌문화에 익숙한 우리 한국인들이 중국에서는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몸을 맡겨야 하니.

지금은 늘어난 재중 한국인들을 위해 한국식 장판이나 보일러를 설치해 주는 한국 업계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필자가 있었던 상하이를 예로 들어, 중국 남방지역의 집들은 기본적으로 난방시설이 있지 않기 때문에, 칼바람이 불어 대는 겨울은 춥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6∙25 전쟁 당시 인민군복을 연상케 하는 두텁게 누빈 내복에 점퍼까지 걸쳐 입고, 옆에는 히터를 튼 채 움츠리고 버티던 겨울에는 우리의 “뜨끈뜨끈한” “넓은” 집이 참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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