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上)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上)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1.1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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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2018년 10월, 평양에서는 2007년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공동선언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개최 되었다. 그 자리에 참가한 송영길 의원을 비롯한 한국측 방문단에 따르면, 북한측은 한국측 참가자들에게 한국의 제반 사회문제를 언급하며 그에 대한 해법도 조언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정치의 특징이라든가, 한국의 경제가 나아갈 방향, 그속에서 남북관계가 어떤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좋을지 등 우리사회 구석구석을 꼼꼼히 파악하고 대화했다는 것이다.

참가했던 한국정치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우리공화국에 대해 반세기전의 잣대를 들이대 판단하는것 같다’는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북한사회의 엄청난 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일화인 동시에 우리가 북한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변화상에 얼마나 뒤쳐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라 생각된다. 

비단 북한뿐 아니라 우리사회가 지닌 폐쇄성과 편협함은 우리와 다른 사회와 종교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슬람 국가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두고도 ‘그 맛있는 돼지를 먹지 않는다니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라며 문화적 특수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의 인구만 해도 15억이 넘는다. 당장 비행기 타고 서너시간만 날아가면 마주하는 동남아시아의 이슬람국가에서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우리보다 훨씬더 많은 인구가 그렇게하고 있음에도 도무지 수용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원래’라는 표현을 ‘열린사고의 적’이라 부른다. ‘저사람들은 원래 저래’, ‘나는 원래 이래왔어’라는 표현은 더 많은것을 받아들이고 발전하는 동력을 갉아먹는 표현이다. 자기가 아는 세계로 사고를 한정한채 새로운 세계를 거부하거나 수용하지 않으려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민족은 유독 이 배타적 성향이 강하다. 우리보다 더 강한 나라들을 버텨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 글로벌사회에서는 우리와 다른 것도, 이질적인 것도 더 많이 수용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의 사고와 세계를 넓혀나가야 한다. 나를 계속해서 좁은 세상으로 옭아매는 ‘나는 원래’, ‘말도 안돼’, ‘이상하네’, ‘정말 웃기다’와 같은 ‘닫힌 사고’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경험하고수용하는 ‘열린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2006년에 쓴 저서《21세기 한중일 삼국지》에서 ‘벌떼 민족주의’라는 표현을 쓴적이 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표현은, 여전히 유효한것 같다. 큰 무리를 지어 단일대오로 뭉쳐 살아가는 벌떼들이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어떨까. 유난히 단결력이 강한 우리민족 또한 지도자를 잘만나야 생존과 번영을 지속할수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 불행했던 역사가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다행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한민족은 그 어느때 보다도 총명하고 유능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한반도 주변 4강과 우리를 비교할때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가장 ‘닫힌 사회 Closed Society’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비해 우리국력이 비교 열세에 있는 탓에, 생존과 번영을 위한 일치단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남다른’ 사고나 행동은 설자리가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견 강국으로 성장한 오늘의 대한민국은 우리를 빈번히 침략했던 중국과 일본 등을 ‘짱깨’나 ‘쪽바리’라고 비하하며 경원시 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보다 속속들이 파악하고 주도면밀하게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도 더 열린사고로 한반도 주변국 및 글로벌사회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중국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긍정적측면 보다는 부정적측면을 위주로 바라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허드슨연구소 중국센터 마이클 필스버리 Michael Pillsbury 소장은, 2015년에 발간한 저서 《백년의 마라톤》를 통해 ‘중국은 민주주의를 따르게 될 것이다’, ‘중국은 기반이 약해 한낱 무너지기 쉬운 힘에 불과하다’와 같은 미국의 가설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착오에 대해 “미국 역사상 가장 명백하고 위험한 정보의 실패”라며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자국을 향한 “미국은 중국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다”는 그의 경종은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중국은 이미 낡고 고루한 과거의 허물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중국에 대해 부정적 인식 위주의 고정관념과 선입견, 편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에 대해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면, 중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용할 수 있는지도 잘알게 된다.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본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고대시기에는 백제문화가 일본열도로 전파되어 일본이 자랑하는 아스카문화를 꽃피게 하는 등 형제관계에서 ‘형’과 같은 기분을 누릴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일본으로 부터 빈번히 침략받고 또 식민지배 받으며 증오감이 생기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현재의 일본 또한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더 잘나가는 가운데 못된 과거도 부정하며 도발을 일삼고 있다. 이 어찌 곱게 볼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것에만 집착하면 그것이 바로 닫힌 사고요, 그로 인해 우리의 발전은 더뎌지고 만다. 과거를 가지고 분노한다 한들, 현재와 미래라는 측면에서 좋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운놈에게 떡하나 더준다’고 했다. 일본을 초정밀 레이저로 스캐닝 하듯 면밀히 파악한뒤 새롭게 다가가 보는건 어떨까. 과거는 잊지말고 기억해야 마땅하다. 이제는  피해자의 아량으로 가해자인 일본을 역지사지 해보자. 그러면 일본 정부의 행태가 사실은 지은 죄 값이 두려워 아등바등 거리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한민족의 관대함으로 오히려 보듬어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둑질한 놈이 오히려 성내는 식으로 잔뜩 움츠린 채 으르렁거리고 있는 저들에게 손내밀어보는 건 어떨까? 싫건 좋건 동북아에서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망나니 같은 아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이어서 다음 주에는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下)'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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