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 발행소'가 되어버린 언론 유감 (上)
'딱지 발행소'가 되어버린 언론 유감 (上)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12.2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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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나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다. 나랑 똑같이 생겼다(무지 걱정된다). 이 녀석은 중국에서 생활할 때, 아직 유치원에 입교하기 전부터도 외국인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어느 날은 일본인 애들과 놀다 왔는지 “아리가또!”를 연발하며 일본인 친구들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런데 유치원에 들어간 뒤, 시무룩해져 돌아와서는 “아빠 일본 사람들은 다 나쁜 거야? 일본 애들하고는 잘 놀면 안 되는 거야?”라며 눈물을 흘릴 듯 물었다. 왜 그런가 알고 봤더니, 한국 유치원에 다니던 녀석이 이른바 ‘한일의 과거’에 대해 들었고 또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나쁘다’는 식의 인식을 접했던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못 심각하게, “그럼 나는 일본인친구들하고는 어떻게 해야 돼?”라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고 말았다. 

귀국한 뒤 중학교를 다니던 아들 녀석. 중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했던 아들에게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들은 학교 친구들에게 중국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고 중국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며 수정해주는 등 스스로 중국 홍보대사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방과 후 돌아와 짜증 나듯 묻는다. “아빠, 우리가 중국에서 직접 접했던 것이 중국 맞아? 아니면 애들이 말하는 게 진짜 중국이야?” 아이들이 말하는 이야 기는 직접 중국에서 느낀 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물어봐도 애들과 비슷한 대답을 하니,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참 기가 막힌 현실이다. 아들은 중국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자기 몸으로 직접 중국을 느끼고 인식했다. 그 결과, 중국의 부정적 측면도 잘 알지만, 궁극적으로는 긍정적 이미지를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반면에 친구들은 한국에서 주로 우리의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중국을 인식했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는 부정적 이미지를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동일한 한국인이지만 직접 체험한 중국과 간접 체험한 중국의 이미지 사이에 큰 ‘차이’가 ‘나’는 ‘차이나 현상’이 존재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중국 현지에서 직접적으로 알게 된 중국과, 한국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두 개의 중국’이 있는 것이다. 

나는 녀석에게 가끔 묻는다. “요즘도 학교 친구들하고 중국 이야기 좀 하니?” 그러면 이 녀석, 시큰둥하게 타이르듯 대답한다. “아빠, 애들한테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안 통해! 아무리 해도 나만 바보되는 걸 뭘 말하냐구!” 

이제 이 녀석은 일본에 대해서도 주로 부정적 인식을 지니게 된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에도 좋은 사람은 많은데 일본 정부는 싫어”라고 나름 구분한다는 점이라고 할까.

이런 모습이 오직 내 아들과 그 친구들한테만 국한된 것일까? 중국과 일본에 대해 보도하는 우리 사회의 언론매체를 보게 되면 이들과 거의 유사하게 되지 않을까? 한민족의 앞날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어린 후예들에게도 굳이 반중 및 반일 감정을 지니게 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견강부회牽强附會, 침소봉대針小棒大와 같은 우리언론의 부정적으로 확연히 치우친 보도자세는 과연 얼마나 바람직하다 할 수 있을까.

일본은 보도, 한국은 언론, 중국은 매체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를 통해 “사람들은 생각이 같은 집단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집단적 사고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면서 “어떤집단을 극단적이고 광신적 집단으로 만드는 쉬운 방법은 그 구성원들을 다른사람들로 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되면, 그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 정보를 점점 더 불신하게 된다. 그속에서 고작 몇개의 마음에 드는 정보를 토대로 의견을 주고 받으므로,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또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다. 이런식으로 그들은 점점 더 자기들안으로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한중일3국의 신문기사의 특성에 대해 ‘일본은 보도報道, 한국은 언론言論, 중국은 매체媒體’라고 비교분석 하기도 한다. 보도는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것’이요, 언론은 ‘말이나 글로써 자기의사를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팩트와 사실보도에 충실한 일본언론과 당의적 주장과 명분에 비교적 높은 가치를 두는 한국언론의 특성을 잘 분석한 것이다. 반면에 중국의 매체란,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당과 정부지침을 받아 가이드라인에 맞춰 내용을 전달하는 중국의 상황을 잘 지적한 것이다.

나는 한중일3국의 ‘언론’에 대한 이분석에 상당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한국언론의 ‘말이나 글로써 자기의사를 발표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도 없지 않다. 어떤 특정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나 관점을 언급하는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언론이라면, 그것 못지않게 그 사안의 ‘사실관계(fact)’를 틀리지 않게 전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아니, 사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팩트 그대로를 적확하게 파악하고 전달하는 것이 본령이요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언론의 보도는, 다른분야는 잘 몰라도 이책의 주된 관심사인 중국및 일본등과 관련해서는 사실 및 현실등과 다르거나 맞지 않는 내용이 적지 않다.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혹은 너무 치우친 내용을 전달하면서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자신들의 의도된 ‘의사’를 덧붙이기도 한다. 이를 읽는 독자들의 해당사안에 대한 이해도 및 인식 등은 과연 어떻겠는가.

※이어서 다음 주에는 ''딱지 발행소'가 되어버린 언론 유감 (下)'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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