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반도에는 21세기의 담론이 필요하다 (上)
21세기 한반도에는 21세기의 담론이 필요하다 (上)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12.1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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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세상에서 국가간 통화료가 가장 비싼 곳은 어디일까? 바로 우리 남과 북이다. 한국에 와 있는 북향민 청년들은 3~4개월에 한번씩 북에 있는 부모에게 전화를 한다고 한다.

몇단계의 브로커를 통해야만 부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중국 전화번호를 이용하기 때문에 북한에 있는 부모님이 중국전파가 잡히는 국경지역까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이동해야 한다. 통화시간에 맞춰 통화를 한다고 해도 5분이내에 마쳐야 한다. 5분이 넘어가면 탐지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렵사리한 5분 남짓의 통화 비용은 우리 돈으로 무려 100만원에 달한다. 이 청년은 100만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기 위해서 열심히 알바를 하고 먹을것도 줄여가면서 돈을 모은다. 방학때는 힘든 육체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상에 이렇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통화가 또 어디 있을까? 서로 맞닿아 있는 남과북, 대한민국의 전신·전화 관련 기술은 세계최고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언제까지 이렇게 값비싼 통화료를 지불해야 할까. 이 글을 쓰는 이순간에도 그청년과 우리민족의 서러운 현실이 떠올라 먹먹한 가슴을 주체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다른나라에 비해 ‘정치갈등으로 인한 사회분열’ 양상이 훨씬 높은 나라다. 영국의 BBC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2018년 1~2월 전세계 27개국을 대상으로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한국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갈등요인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간의 갈등’(61%)으로 조사 됐다. 같은 질문에 대해 연정聯政과 협치協治의 정치문화가 자리 잡은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20퍼센트대라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갈등 수준은 매우 심각하다.

또 정치적으로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정도는 27개국중 단연 1위였다. 한국민의 35퍼센트는 가장 신뢰할수 없는 집단으로 ‘정치적 관점이 다른 집단’을 꼽았다. 프랑스(7%)의 다섯배에 이른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작 정치갈등을 조정하고 완화해야할 국회는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철 지난 이념에 머무르는 좀비 정치의 폐해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 진단 및 대응방안 (Ⅳ)-사회문제와 사회통합>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열명 가운데 여덟명은 우리사회의 갈등이 극심하다고 여기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에 전국의 만 19세 이상∼75세 이하 남녀 3,839 명을 상대로 사회갈등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갈등수준에 대해 ‘매우 심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8.5퍼센트, ‘대체로 심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71.8퍼센트 등 응답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우리사회를 갈등이 심한 사회라고 생각했다. 의미있는 것은 갈등유형중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이 진보와 보수간의 이념갈등으로, 응답자의 85.2퍼센트가 ‘매우 심하다’(40.8%) 또는 ‘대체로 심하다’(44.4%)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특히 진보와 보수간의 이념갈등은 2014년 80퍼센트에서 2016년 79.5퍼센트로 줄었다가 2017년 조사에서 85.2퍼센트로 큰폭으로 올랐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이념갈등은 어느사회에서나 존재하는 것으로 건전한 정치발전의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일상의 사소한 갈등이 불필요하게 이념갈등으로 증폭됨으로써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1995년부터 한국을 떠나 일본유학과 미국유학, 그리고 중국유학 등을 거쳐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뒤 중국 상하이의 국립동화대학에서 한국인 교수로 재직해 왔다. 20년이 넘는 다양한 해외생활을 통해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절감했다. 아무리 오랜시간 고국을 떠나 있어도 ‘태극기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지며 애국가나 아리랑 자락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뼛속 깊은 ‘대한민국 사람’의 정서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내가 판단할 때에 우리 사회에는 ‘좀비들’이 적잖아 보인다. 우리 사회에는 고장난 괘종시계 마냥 냉전만 우려먹고 사는 좀비들이 기생하고 있다. 그들의 두뇌는 이미 20세기 냉전상태에서 기능을 멈췄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기형적으로 움직이며 21세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20세기 과거적 사고를 들이대며 이리저리 방해하는 것이다. 

20년이상을 해외에서 ‘동북아와 한반도’라는 국제정치분야에 집중해온 나는, 국내정치분야에 대해 언급하기가 조심 스럽다. 하지만 양심을 걸고 좌파나 우파의 정파적 이익을 떠나 오로지 대한민국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소신껏 말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 일부 정치인들은, 동북아지역의 국제관계에 관한한, 진정으로 무지하기 때문인지 혹은 의도를 가졌기 때문인지 너무나도 구태의연하고 오류투성이다.

그런이들이 ‘정치지도자’이다보니, 그들의 무책임한 목소리가 동북아 의제의 프레임을 좌우할 수 밖에 없다. 바깥세상은 변화무쌍한데 우리의 변함없는 프리즘, 그로인한 시대착오적 인식은 바로 이런 좀비정치인들이 빚어낸 폐해가 아닐 수 없다. 동북아 각국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 또한 희생양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18년 9월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우리사회는 물론 전세계가 뜨겁게 기뻐 했다. 우리사회의 대표적 보수단체인 자유총연맹 또한 ‘평화를 위한 정상회담을 지지 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고 환영집회를 열었다. 한반도 전망에 대해 냉랭한 평가로 유명한 독일언론 또한 ‘남북이 공동으로 견인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 했다.

공영방송인 <도이체벨레>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북한에 대해 각각 “영변 핵시설의 폐기 제안에 상응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언급했으니 이제 공은 미국 쪽으로 넘어간 것”, “김 국무 위원장은 북한의 ‘안전’이 위태로워지지 않도록 격할 정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좀비정치인들과 그 추종세력들은 요지부동이다. 가파른 변화상 속에서도 ‘우리 국방의 눈을 빼버리는 합의’라며 철지난 이념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있다. 지방선거 패배후에 야권이 보였던 ‘냉전과 반공주의 노선을 포기하겠다’던 자성도 야권을 좀먹는 이들 좀비정치인들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보수라 ‘자칭’하지만 그건 ‘사칭’이다. 보수도 아닌, 오히려 정통 보수와 건전한 보수세력을 욕먹이는 좀비정치인들의 모습은 우리모두의 앞날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 하지 않다. 훗날 우리 한민족의 후예들은 21세기 대한민국 정치권에 잔존하는 좀비정치인들에 대해 과연 어떻게 기록 할까. 아, 착각하지 마시라! 좀비정치인은 현재의 야권뿐만 아니라 여권에도 존재 한다. 어쩌면 드러나기 쉽지 않은 여권속의 그들이 더 위험할지 모른다.

※이어서 다음 주에는 ‘21세기 한반도에는 21세기의 담론이 필요하다 (下)’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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