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음주 문화
한∙중∙일의 음주 문화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09.08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한국, 중국, 일본은 많은 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3국은 술이 일상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 에서는 매우 유사하다. 아울러 그 술을 통해 사람을 사귀고 관계를 깊이하며, 또 그 술로 인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극히 유사하다 할 수 있다. 동북아 3국도 음주하면 한가락 하는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는데, 한∙중∙일 3국에서 지내며 경험한 음주 문화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먼저 중국의 술과 음주 문화를 본다. 중국에서는 전설 속의 국가라 일컬어지는 하夏나라 우禹왕 때(기원전 2000년경)에도 이미 술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우왕의 딸이 아버지께 술을 바쳤는데 이를 마신 우왕이 취한 뒤로 술의 위력에 놀라 술 담그기를 금지시키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오랜 유래를 지닌 중국에서의 술은 넓디 넓은 중국 대륙을 상징하듯 그 종류 또한 무척 다양하다. 각 지방마다 그 지역의 기후와 특산물 등을 이용한 원재료로 빚어 맛과 향 또한 무척 다양하다. 중국의 옛 시선詩仙들이 이와 같이 한없이 다양한 술을 벗 삼을 수 있었기에 깊어 가는 달빛과 함께 더욱 그럴싸하게 읊조려 낼 수 있었는지도 모로는 일이다.

일반 중장년층 중국인들의 음주 문화는 어떤가? 56개 소수민족에 13억 인구로 이뤄진 광대한 중국 대륙의 음주 문화를 일반화시키기란 그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다. 이에베이징(북방)이나 상하이(남방), 광동 등지에서 그동안 잔을 함께 기울여 왔던 중국인과의 교제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먼저 상하이 등지의 남방 사람들은 ‘황지요우黄酒(황주)’라는 알코올 도수 약 15도 전후의 연한 황색 빛이 감도는 술을 즐겨 마신다. 이에 비해 베이징 등의 북방 사람들은 보통 50도 이상 넘는 도수가 매우 높은 ‘바이지요우白酒’(백주)를 즐겨 마신다. 이런 것을 북방의 중국인들은 점심시간에도 반주 삼아 마시며 저녁 연회나 모임 자리에서는 연거푸 들이켠다. 하지만 큼지막한 접시에 가득 담겨 나오는 온갖 풍성한 안주에 떠들썩하게 즐기며 마시기 때문인지 다음 날에도 두통은 별로 느껴지질 않는다.

한편 현재의 20~30대 젊은 중국인들은 우리가 들어온 중국식 음주 문화, 즉 위에 언급한 그것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음주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백주를 맥주 잔에 부어 마시는 그러한 호기는 부리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잔을 다 비우라는 ‘깐뻬이干杯’를 강권하거나 잔을 돌리는 행위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로 마시는 술 또한 더 이상 백주나 황주가 아닌 맥주이다(물론 일반 중장년층도 백주나 황주 만큼이나 맥주를 즐겨 마신다.). 이들은 맥주를 서너 병 시켜 각자 한 병씩 자기 앞에 놓고 자기 잔에 스스로 적당량만큼 따라 마시는 음주 스타일을 즐기기도 한다. 중국에는 맥주의 브랜드 또한 매우 다양하다. 

‘하얼빈 맥주’, ‘칭다오 맥주’ 외에도 중국 각지에서는 각 지역의 독특한 맥주 브랜드를 개발하였고, 다양한 맥주 문화를 만들어 오고 있다. 게다가 개혁∙개방과 더불어 현재의 중국에는 세계 각국의 유명한 맥주란 맥주는 모두 집결되어 치열한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그야말로 중국 인민들은 지금 맥주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에서 즐거운 선택의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의 술 종류는 얼마나 될까?주로 ‘오사케お酒’나 ‘니혼슈日本酒(흔히 청주라 불리는 것)’라 불리는 알코올 도수 약 15도 전후인 일본 전통주가 있는데, 그 종류 또한 엄청나게 많이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마다 독특한 원료와 제조 비법에 의한 특색 있는 맛과 향기를 지닌 술이 적어도 수백 가지 종류에 이른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의 음주 문화는 어떤가? 많은 일본인들의 경우 술 마시는 순서가 대략 정형화되어 있다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들은 먼저 술자리에 앉으면 대부분 맥주 한잔을 하면서 그 날의 음주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먼저 맥주로 가볍게 건배를 한 뒤, 취향에 따라 포도주나 청주 등으로 옮겨 간다. 한편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자그마한 그릇이나 접시에 살짝살짝 조금씩 담긴, 하지만 다양한 각종 안주를 즐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즐긴다. 그러나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강권하거나 잔을 돌리는 행위 등은 거의 하질 않는다. 술을 따르는 것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알아서 자기 잔을 채우거나 혹은 상대방이 첨잔해 주기도 한다. 원래 첨잔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중국도 일본도 첨잔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다름 아닌 평상시의 언행과 술자리에서의 언행의 차이다. 평상시에도 중국인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일관되게 고성방가에 버금가는 일상생활을 보낸다. 

이와 같은 자세는 술자리에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시종일관 시끄럽다. 그렇지만 반대로, 평상시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행동 또한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일본인들 가운데는 술에 어느 정도 몸을 맡기게 되면 돌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음주 전 세계와 또 다른 음주 후의 세계는 애주가만이 지닐 수 있는 또 다른 풍요로움이지만, 일본인들의 ‘변화’는 그 정도가 다소 과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겪어 왔던 다양한 외국인 애주가 사이에서는 접할 수도 없었던 독특함 이었다. 아마도 “튀어 나온 못은 두드려 맞는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중간에서 가라.”는 일본 사회의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평상시 타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주위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일본 사회의 그 억눌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직∙간접적인 경험상 일반적인 한국인이라면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서의 술을 통한 교류에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음주 문화가 양적인 면에서나 강권의 면에서 양국과 비교하여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주변에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한국의 음주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다고 하면, 우리 한국의 자랑거리(?!)인 폭탄주를 권해보는 것은 어떨까? 십중팔구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쩔쩔매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고, 앞으로 우리와의 술자리를 가지는 것을 조심스럽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