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건재한 히든 챔피언, 일본 기업
여전히 건재한 히든 챔피언, 일본 기업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07.2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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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1970~80년대의 일본 기업은 그야말로 세계를 주름 잡았다. 하지만 1990년대 부터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라 일컬어지는 장기불황을 겪는다. 그 사이 자신들이 도왔던 중국은 일약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했고 구 소련은 해체되며 더 다양한 글로벌시장이 전개되는 등 국제사회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이 ‘신속’하게 ‘변화’하는 글로벌시장은 일본기업의 앞날을 더더욱 쉽지 않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세계에서는 아직도 ‘품질하면 일본 제품’, ‘신뢰하면 일본 기업’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의 이와 같은 경쟁력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일본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의 첫번째 동력은 전통에 대한 계승과 발전관이 투철하다는 점이다. ‘우물을 판다면 물이 나올때 까지 파라(井戶を掘るなら水の出るまで, 이도오호루나라미즈노데루마데)’라는 말은, 전통을 소중히 하며 꾸준히 기술을 개발해 나가는 일본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일본은 변화보다는 전통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는 일본 기업의 가장 큰 장점중 하나이다. 이런 모습은 작은가게나 음식점 또한 마찬가지다. 일본사회는 새로운 가게보다 ‘시니세老舗’라고 불리는 오래된 가게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가게가 잘되면 자손이 이어서 대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 경영하는 우나기鰻(뱀장어) 가게를 이어받기 위해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대학졸업후에는 도쿄나 오사카에서 우나기 장인이 되기 위한 ‘수행’을 10년 가까이 거친다. 가게가 잘되면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두 번째로, 일본의 장인정신을 대변하는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를 들수 있다. 모노즈쿠리는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뜻하는 ‘즈쿠리’가 합성된 용어이다.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의미로써 일본제조업의 혼魂이자 일본의 자존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조문화가 아직도 글로벌 세계에서 ‘품질하면 일본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일본은 한때 산업화를 이끈 ‘단카이세대団塊世代(2차대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제조업의 뿌리가 흔들리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중소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모노즈쿠리법’을 제정하는 등 정부가 직접 실효적인 방법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그덕에 현재는 하드웨어 제품판매를 위주로 해왔던 일본의 제조업체들이 기존의 방식을 넘어 소비자에게 체험의 기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코토즈쿠리事づくり(체험창조)’전략에주력, 다시 한번 재도약 하고 있다. 

세번째는, 혁신과 아메바 경영을 들수있다. 일본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을 겪은후에도 여전히 세계경제대국 3위다. 일본이 20년 불황을 견뎌낸 비결에 대해《교토식경영》의 저자인 스에마쓰지히로末松千尋 교토대 교수는 일본전산日本電産, 호리바堀場, 니치콘ニチコン, 무라타村田, 교세라京セラ같은 강소强小기업들을 지목했다. 이들은 최고의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며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일의 ‘히든챔피언’과 같은 존재다. 이들이 외부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혁신경영을 하기 때문이다. 

혁신경영의 대표적예인 아메바 경영은 일본의3대 경영인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명예회장이 창안한 방식이다.기업을 작은 조직으로 세분화하여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면서 인사, 자금, 기술 등 모든 자원배분의 결정권을 소집단에 맡기는 분권적 경영시스템이다.

회사조직을 ‘아메바’라 불리는5~10명 단위의 팀으로 나누고 각팀을 하나의 작은 회사처럼 운영하는데, 이를 통해 직원들은 권한과 책임을 갖게되어 단순한 종업원이 아닌 기업가라는 마인드가 생기고 의사결정도 빨라지게 된다. 이러한 경영기법은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항공JAL의 급격한 추락과 재도약의 반전을 통해서도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아메바 경영을 통해 각 부서간 수익을 책임지는 구조로 조직이 개편되었고, 월말마다 팀별 승패를 측정했다. 영업부문 직원들은 매출 극대화에 노력 했고, 생산부문은 경비절감을 넘어 수익창출에도 나서게 됐다. 이덕분에 연간 800억엔(약8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등 재도약의 반전에 성공했고, 2018년에는 일본 젊은이들의 취업 선호기업 4위로 뽑힐 정도로 비상하게 되었다. 

네번째로, 기업이 사회와 함께하는 공유가치의 추구 이다. 한 예로 농촌의 노령화 문제와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결합한 ‘사회적 농업’이라는 공유가치를 실천하고있는 ‘구신팜메무로九神ファームめむろ’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지적장애인이 효율성을 발휘하기 좋은 농작물 1차가공업무를 부여함으로써 고용창출과 더불어 가공작물 판매를 통한 더 높은 이익창출을 이뤄내고 있다. 더불어 지역내 은퇴 농업전문인력을 서포터로 고용하여 농업 생산 및 프로세스에 안정을 구축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사회 안전’을 공유가치로 내세운 기린 맥주의 무알코올 맥주 출시와 판매량 증대, 세계인의 위생을 공유가치로 선언하고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후진국에 위생변기를 박리 다매로 다량(인도에만 800만대) 판매한 릭실LiXli의 사례 등 공유가치 추구를 통해 실로 작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일본기업으로부터 ‘반면교사’격으로도 벤치마킹할 부분도 없지 않다. 먼저 안타깝게도 글로벌시대의 변화에 그리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의 계승과 양면의 칼 일수도 있다. 이에대해 스에마쓰 교수는 “일본기업은 제조혁신에만 신경썼을 뿐, 경영혁신에는 무관심했기에 실패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일본의 대기업에 대해 “공장에서 제조공정을 개선하는 작업 만큼 마케팅이나 인사, 관리, 영업 등 백오피스 부문에서 생산성을 개선해야 했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기업들의 기술력은 세계 1위지만, 이를 관리하는 경영부문은 굉장히 후진적인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으로는 ‘일본식’에 대한 너무 강한 집착이다. 세계적으로 우수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일본기업의 기술과 시스템이지만, 아무리 좋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채 되어있지 않은 이들까지 무턱대고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상대방이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나가는 모습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각지에 진출할때 ‘너무 한국식으로 밀어 붙인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우리기업들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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