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협론과 일본 응징론의 실체
중국 위협론과 일본 응징론의 실체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05.1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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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일양국은 그야말로 ‘개와 고양이와 같은 관계 犬猿之間’ 속에서 상호간에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중일 양국은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넘길 정도로 오랜 관계를 지속하였지만, 현실은 냉랭하기만 하다. 일본에는 이른바 ‘중국위협론’이 사회저변에 뿌리 내려 있기 때문이다. 

1972년 까지만 해도 일본은 중국을 ‘조금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무리 봐도 미래가 없어 보이는 지지리 궁상인 이 나라에 경제지원의 시혜도 잔뜩 베풀었다. 1978년에는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보잘것없어 보이는 덩샤오핑이라는 사람과 함께 평화조약도 체결했다.

일본을 방문하고 싶어하는 그에게 기회도 선뜻 허하며 “그래 그래, 우리 ‘닛뽕日本(일본인들은 ‘강한 일본’을 강조하고자 할때 ‘니혼’이라는 발음보다 이발음을 사용하기도 함)’이 도와줄테니, 맘껏 배우고 가거라!”며 콧대 높은 느긋함도 과시했다. 2,000년이 넘는 중일양국의 교류역사에서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일본을 찾은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중국대륙을 침략하여 마구 짓밟았던 일본에, 지구상 그 어느나라 보다도 체면을 중시한다는 중국 최고 실권자가 ‘우리를 맞이해준 일본에게 감사한다’며 고개를 푹숙이고 방문한 것이다. 2개월이 지난 1978년 12월, 덩샤오핑은 일본에서의 충격을 토대로 개혁 개방 노선을 전격 채택했다. 

1980년대의 중국은, 국가예산의 상당부분을 일본에 의지해야만 했다. 일본의 공적 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가 없었다면 오늘날 중국의 경제성장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1979년부터 일본이 중국에 공여해온 차관은 3조 3165억엔에 달한다. 1979년부터 1995년 사이에는 중국이 국제사회로부터 공여받은 차관 가운데 42퍼센트가 일본으로 부터 나왔을 정도였다.

천안문사태 당시만 해도 일본이 가장 먼저 ODA를 재개함으로써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를 해제시키는 촉매제 역할도 했다. 이정도로 일본의 경제협력은 중국의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지금으로부터 약2,500여년전 춘추시대 월나라의 구천을 보라. 곰의 쓸개를 핥으면서 오나라왕 부차에게 복수를 다짐했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인물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온갖 진귀한 조공품뿐아니라 경국지색이라 불리던 미녀 ‘서시’도 보내지 않았던가. 또한 오나라가 다른나라를 침범할때는 자국의 군대도 지원하는 등 그야말로 성심성의 다하는 신하의 나라인 것처럼 행동 했다. 무려 20년을 그렇게 지내는 가운데 내적으로는 치욕을 갚기 위한 힘을 길렀다. 그러다가 결국 오나라를 쓰러트리지 않았던가.

중국의 현대판 와신상담은 20년도 가지 않았다. 중국은 그들을 침략했던 일본으로 부터 사죄는 커녕 온갖 수모를 겪으며 절치부심하다가 결국 15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0년대 부터 일본이 더이상 여유롭게 미소짓지 못하게 만들었다. 2000년대 부터는 일본으로 하여금 강한 초조감과 당혹감을 느끼게 하더니 2000대 후반 무렵부터는 일본사회에서 ‘중국위협론’이 불가피한 대세로 자리잡도록 만든 것이었다.

이와 같이, 지난 40여년 동안 일본은 중국에 대해 천국에서 지옥으로 급강하 하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결과, 오늘날 중국을 대하는 시선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1980년대에는 80퍼센트 정도의 일본인이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꼈다. 하지만 2018년 현재는 80퍼센트정도의 일본인이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반대의 현상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현재의 일본 역시 중일양국 경제의 상호현상 심화등으로 인해 중국을 과거보다 더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이미지는 결코 좋지 못한것이다. 오히려 중일양국간 경제규모의 역전 현상이 커져갈수록 중국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가 아닐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일본에 대한 중국의 감정은 어떠한가? 대단히 좋지 않다. ‘건드리지 않으면 신의 노여움도 없다(觸ぬ神にたたりなし, 사와라누가미니타다리나시)’는 속담처럼, ‘우리를 건드리지 않으면 너희도 탈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꾸 건드려 부스럼을 만들지 말라!’는 감정이팽배하다. 

물론 중일양국은 미국의 ‘갑질’에 대한 공동대응 전선을 구축하는 등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한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중국인의 가슴속 깊이 뿌리 박힌‘ 이 커다란 중국대륙이 저 조그만 섬나라에 짓밟혔다!’는 치욕과 수치심은 단기간에 치유될 수 없다. 하물며 일본은 그 역사조차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샤오르뻔小日本’이나 ‘르뻔뀌즈日本鬼子’와 같은 표현만 보아도 일본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잘 알수 있다. 

‘샤오르뻔小日本’이란, 한자 그대로 ‘작은 일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인들 사이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함의는 표면적인 작은 일본과는 퍽 다르다. 중국에서 ‘작다’라는 뜻을 지닌 ‘샤오小’를 국가이름 앞에 붙여서 관용어처럼 쓰는 경우는 일본외에는 없다. 소영국小英國, 소태국小泰國 그리고 소한국小韓國등과 같은 관용어는 없다. 즉, ‘小+나라이름’은 단순히 국가의 영토나 규모면 등에서 ‘작음’을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다름 아닌 ‘경멸스러운’, ‘하찮은’ 혹은‘보잘것 없는’등과 같이, 얕보고 천시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르뻔뀌즈日本鬼子’ 역시 마찬가지 이다. ‘뀌즈鬼子(귀신의 자식)’ 또한 전세계 국가 이름중에 오로지 일본에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 의미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일본인들을 흉측하고 가까이하기 싫은, 마치 귀신의 자식과도 같은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다. 어감상 우리가 과거에 사용했던 ‘쪽바리’와 같은 비하보다 더한 증오와 경멸의 뜻을 지닌 단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 단어들이 널리 회자되고 있으며, 30개가 넘는 중국의 주요TV 채널들은 여전히 항일 전쟁드라마등의 반일콘텐츠를 경쟁적으로 방영하고 있다. 

중일양국의 악감정이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일본에 대한 중국의 뿌리 깊은 원한과 적대감등은 우리사회 일각에 있는 일본에 대한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이상황에서 중국의 제반국력이 현재와 같이 꾸준히 강화되어 가고, 이에 대한 일본의 대응전략도 그만큼 첨예하게 되어 간다면, 중일양국 사이에 전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지적인 충돌등은 발생할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더 우려되는 것은, 혹시 라도 발생할수 있는 양국의 충돌이 단지 중일양국에만 국한되지는 않을것이라는 점이다. 1894년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이 두 전쟁은 청나라와 러시아라는 대륙세력과 일본이라는 해양세력이 충돌하여 빚어진 것이었다. 하지만그 전쟁터는 대륙과 해양 사이에 끼여있는 우리 한반도였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치의 양보없이 대치하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한반도를 사이에 끼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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