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과 반도, 열도의 기질 및 우리만의 특징
대륙과 반도, 열도의 기질 및 우리만의 특징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02.25 14:45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한중일 3국은 지정학적 영향으로 각기 다른 성격적 특징을 지니게 되었는데, 중국인들의 대륙적 기질, 한국인들의 반도적 기질, 그리고 일본인들의 열도적 기질이 그것이다. 우선 대륙적 기질과 열도적 기질을 간단히 비교해 보자. 

중국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광활한 영토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14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 나라다. 과거에는그 넓은 면적에 지금보다 적은 인구가 살았다. 그러다보니 1인당 혹은 가구당 차지하는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었다.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인 중국에서 1인당 담당하는 면적 또한 그만큼넓을 수 밖에 없었다. 옆사람이, 바로옆이 아닌, 저만치 떨어져서 일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가령 식사를 하자고 옆사람을 부를때면 “어어이~ 왕서방, 식사하고 다시하자구!” 하며 큰목소리로 부르는것이 자연스럽다. 언제 어디서건, 큰목소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중국인의 습성은 이런 환경에 기인 했을것이다. 드넓은 공간에서 나홀로 혹은 가족단위의 사람들만 생활하다 보니, 타인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개인주의적 성향도 강해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건둘만의 비밀인데 말야…” 하는 비밀스런 통화 내용을 저멀리 떨어진 사람들도 알아듣고 맞장구 칠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비록 가상의 예에 불과하지만, 대륙이라는 거주환경은 반도나 섬나라 사람들보다 크고 과감하며,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적당히 대강대강 넘어가는 여유로움(?)을 지니도록 했다. 중국인 특유의 호방하고 시원시원 하지만 거칠고 투박한 면모가 갖춰지게 된 것이다.

반면에, 일본인들은 동서로 좁고 남북으로는 긴 섬에서 살아왔다. 영토는 넓다고 할 수 없고 그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적다고 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다 보니, 오밀조밀 모여 복닥복닥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비좁은 일본식 전통 가옥을 속칭 ‘우사기 고야兎小屋(토끼집)’라고 불렀던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처럼 바로옆에 사람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는 누군가를 목청껏 부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된다. 무슨 말을 하면 옆 사람이다 들을 수 있으므로 항상 주위를 의식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이 속에서 어떤 일을 하다가 잘못 되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있고 그렇게 되면 서로의 생활 또한 불편해진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먼저 다른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남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며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다양한 음주 문화나 엽기적인 문화가 남다르게 발달하기도 했다.

우리 한민족 또한 대륙이나 열도와는 다른 기질적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중일 양국의 ‘중간자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중국인들의 목소리보다는 크지 않지만 일본인들이 내는 목소리보다는 크다. 중국인들보다는 덜 거칠지만 일본인들보다는 더 거칠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보다는 덜 꼼꼼하지만 중국인들보다는 더 꼼꼼하다. 일본인들보다는 주변을 덜 신경 쓰지만 중국인들보다는 더 신경 쓰는 등 중간적인 모습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은 독특한 기질적 특성은 한중일 3국을 조절하고 중계함에 있어 적합하다. 나는 실제로 오랜 해외생활을 통해 이를 경험했다. ‘극대극’의 기질을 지닌 양국 사람들을 중간에서 꽤 능숙하게 중개해낸 일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여기서, 한중일 3국 가운데 유독 우리만의 독자적인 특징에 대해서도 같이알아보자.

한국에는 이런 독자적인 문화가 있다. 바로 ‘공짜를 좋아하는 습성’이다. 이는 각국의 속담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에는 각각 ‘세상에 공짜 점심이란 없다(世上没有免费的午餐, 스샹 메이요 미엔페이더 우찬)’라거나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다(ただより高いのはない, 타다요리 다까이노와나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한다. 한중일을 오가며 겪은 오랜 경험에 비추어 부탁하건데 공짜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는 매우 의미있는(?) 제언이다.

우리가 지닌 독자적인 특징 하나를 더 언급하고자 한다. 바로 대단히 솔직담백하다는 것이다. 사실, 솔직한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반드시 좋다고만은 하기 힘들다. 일본에는 ‘한 장의 종이에도 앞뒤가 있다(一枚の紙にも表裏あり, 이찌마이노 가미니모 효우리 아리)’라는속담이 있다. 사람의 언행에는 겉과 다른 속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한중일 3국 가운데 가장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하지만 중일 양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속내를 알기가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일본인들이 ‘Yes’라고 하면 그건 ‘No’를 뜻한다”고 불평했겠는가! 중국인들은 일본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속에 검은 구렁이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모른다. 이들 앞에서 솔직담백하게 직설적인 우리의 의사와 의도를 내비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한중 혹은 한일 비즈니스를 다양하게 중개한 바 있는 입장에서 다시 강조하고 싶다. 솔직한 것도 좋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때와 장소는 적절한지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한중일 3국의 국민성은 개개 고유한 역사 발전의 영향을 받아온 바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중국인들의 남다른 ‘혈족 및 물질 중시’ 풍토와 한국인들의 남다른 저항적 태도, 그리고 일본인들의 남다른 ‘순종적 자세’가 그렇다. 한중일 3국 가운데 하나의 왕조가 가장 오래 지속된 곳은 단연 한반도의 왕조들이다. 

한반도의 주류 역사에서 최단 기간 존속했던 것은 고려왕조인데, 최단 기간이라지만 무려 470여년을 지속했다. 이는 중일 양국의 역대 왕조들보다 훨씬 긴 기간이다. 이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정부에 대한 불신이나 저항의 태도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왕조는 안정을 구가했다지만 사실 그 혜택은 대부분 위정자들에게 돌아갔으니, 백성들은 왕조가 지속되는 기간 내내 상층부로부터 온갖 형태로 시달리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또한 상층부의 부정부패와 권력 투쟁 등으로 외침이 초래되면 그 여파 또한 백성들이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민초들은 정부나 위정자들에 대해 시나브로 강한 불신과 저항감을 지니게 된 것이다.

중국의 역사 발전은, 한마디로 극도의 혼란과 불안정의 반복이라 할만하다. 중국의 최장 기간 지속 왕조라 할 수 있는 당이나 명나라도 채300년을 넘지 못했다. 진시황이 세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나라도 천년만년 지속될 것처럼 거대한 만리장성을 쌓았으나 15년밖에 존속하지 못했다. 수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하는 삼국지 시대도 불과 60년이었고 고구려를 침공하여 우리 역사에도 등장하는 수문제와 수양제의 통일 왕조 수나라도 30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이처럼 중국은, 단명 왕조라는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의 왕조가 건국되고 멸망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세력들과의 대립과 다툼, 전쟁 등을 거치며 서서히 힘을 키워오다가 통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넓은 대륙의 또 다른 곳에서 힘을 키워온 세력의 도전을 받으며 멸망하고 이후 또 다른 세력이 나타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춘추전국시대(BC 770~221년)에는 이 같은 왕조의 건립과 멸망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전자인 춘추시대에는 242년간 36명의 왕이 시해되었고 왕조의 멸망 또한 52회나 있었다. 후자인 전국시대에는 248년간 크고 작은 전쟁이 무려 222회나 있었는데 매년 1회씩 전쟁을 치뤘다는 셈이다. 이와 같은 역사발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대륙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늘 혼란스러웠다. 이와 같은전란의 고통 속에서 백성들은 스스로 안위를 지켜야 했다. 믿을 것이라곤 혈족과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금은보화뿐이었다. 중국인들의 ‘남다른’ 혈족주의와 물질주의, 나부터 살고보자는 강한 개인주의와 타인에 대한 무책임과 무관심은 바로 ‘남다르게’ 가혹했던 역사에서 비롯된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이다. 일본 역사에도 수많은 다툼과 전란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상층부에서의 권력쟁탈 성격이 강했다. 다시 말해, 권력자들이 서로 혈전을 벌인다 해도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은상대적으로 덜했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일본인들은 상층부들의 싸움은 ‘그들의 일’로 치부하며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지내왔다. 그저 권력자들 모두에게 골고루 고개 숙이며 순종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해도 중국에서와 같이 사돈의 8촌까지 화를 당하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와 같은 역사를 거치며 일본인들은 우리나 중국인들에 비해 정치에 상대적으로 더 무관심하며 권력에 순종적인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런 역사적인 배경 탓에 일본의 정치인들만 어부지리를 챙기게 되었다. 순종적이고 항거를잘 하지 않는 일본인 덕에 타국들에 비해 정치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푸른늑대 2023-03-31 14:25:25
재밌는 글이네요 일리있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사 2021-04-25 05:12:47
재미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