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술 Chapter I.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20) 공중정원, 바벨탑 논쟁과 이설
[인류의 미술 Chapter I.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20) 공중정원, 바벨탑 논쟁과 이설
  • 조명계 용인대 교수
  • 승인 2019.09.16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실은 무엇일까? 성서고고학자들 의견들이 갈리는 가운데 바벨탑 이야기 번역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문제제기를 통해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를 지적할 수는 없다.

다만 바벨탑 이야기 자체가 워낙 혼돈스럽기 때문이다. 히브리 인이 사용하는 바벨이라는 단어에서 영어의 babble이란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어인 아카드어에서는 Babylon이나 Babel의 어원에서는 전혀 혼돈이라든가 섞는다는 의미가 없다. 그들이 사용하는 바블이란 의미는 신들의 통로라는 뜻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가장 화려했다고 전해지는 Entemenanki 지구라트를 1913년 실사할 당시 탑의 실제 높이가 200 피트 정도였음이 밝혀졌다. 200피트라면 약 60m 정도 요즘으로 말하면 17-18층 정도라고 할지? 17-18층 정도 밖에 안되는 탑에 공중정원이 있었을까? 사실 네부카드네자르 II세의 어록에도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도 직접 언급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씌여지게 된 바는 훗날(당시의 훗날) Diodorus Siculus, Quintus Curtius, Strabo, Flauvius Josephus 등의 고대 학자들에 의해서 씌여지게 된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들도 역시 탑이 허물어지고난 다음에 세상에 나온 학자들이다.

또 하나의 가설은 그리스 로마 학자들이 아시리아 인과 바빌론 인을 혼돈한 데 있다. 흥미로운 점은 바빌론이 아닌 아시리아 니니베의 부조 조각에 아시리아 왕이 잎들이 많은 정원에 물을 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공중정원이 바빌론이 아닌 니니베에 있었다는 말일수도? 

본 자가 없으므로 어느 누구도 확인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유추에 의한 고대 역사의 기술은 위험하다. 내용을 과연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예나 이제나 정치인들이란 본인의 치적을 위해 거짓을 강제로 기록하게 한다.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왕궁을 재건축 할 때 벽돌에 무어라고 새긴 줄을 알면 더욱 기가 차다... 네부카드네자르의 아들인 사담은 옛 이라크의 영광을 위해 짓노라... 이쯤되면 나도 내 텃밭에 말뚝박고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아담과 이브의 후손인 나는 아름다운 에덴의 영화를 위해 여기 텃밭을 가꾸노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