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반쪽짜리 삶을 찾아라
나머지 반쪽짜리 삶을 찾아라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12.21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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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필자가 다녔던 일본 게이오 대학 도서관에는 항상 빈자리가 있었다. 새벽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도서관 앞에서 줄을 서야하는 한국처럼 경쟁이 치열하지도 않거니와 한국 학생들처럼 도서관에 ‘상주하다시피’ 지내는 외국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가든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 조금 놀랐다. 게이오 대학이라면 일본의 명문대학교인데 도서관 열람실이 텅텅 비어있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한국 학생들로 인해 자리가 어느정도 채워지는 정도였다.

실제로 일본이나 미국, 중국의 한국인 유학생들은 언제나 도서관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도서관을 떠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놀더라도 꼭 도서관 주변에서 맴도는 게 전형적인 한국 학생들의 특징이다.

당시 외국 생활을 처음 하다시피 했던 필자에게 이런 대조적인 도서관 풍경은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주류에서 벗어나면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다. 남과 다르게 삶으로써 받는 따가운 눈총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다. 이런 강박관념이 있으니 놀러 가면서도 ‘학생의 본분에 맞는’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두어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 아닐까?

이런 한국인의 특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가 있다. 필자가 재임했었던 대학에서는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온 약 3천6백여 명의 외국인들이 함께 지냈다. 가깝게는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부터, 남미와 아프리카의 작은 부족국가 등 그야말로 전 세계인이 모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끼리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나 국제학부 건물을 ‘작은 유엔’이라 부를 정도니 말이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한∙중∙일의 경제 발전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한국이 유독 빠른 시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워커홀릭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몇몇 외국인 학생들이 ‘현지의 한국인 학생들만 봐도 잘 알겠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워커홀릭이라면 한국 학생들은 ‘스터디 홀릭’인 것 같아요.”

한국 학생들은 오로지 공부밖에 모르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한 학생은 ‘모두들 교수나 법조인이 되려고 해선지 모르겠지만, 외국 유학을 나왔으면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새겨들을 말이다.

특히 이 외국인 유학생들이 지적하는 바 중의 하나는 외국 학생들과 어울리는 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한국 학생들의 태도였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그런 모습들이 ‘배타적’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한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데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렇다면 ‘스터디 홀릭’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외국 유학생들의 평상시 모습은 과연 어떨까?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마디로 아주 ‘잘 논다’. 시시때때로 여러 나라 학생들과 어울려 바비큐 파티를 열거나 다양한 사교 모임을 개최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봄 학기가 되면 봄기운을 한껏 만끽하며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닌다. 이때는 여행 등을 이유로 대며 결석에 대한 양해 아닌 양해를 ‘당당하게’ 구한다. 방학 때는 중국 대륙을 부분별로 ‘공략’하겠다며 배낭을 싸들고 훌쩍 떠나는가 하면, 가을 학기가 되면 ‘이 짧은 가을을 덧없이 보내기가 너무 아깝다’며 또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계획한다. 강의실이나 도서관에 앉아 책으로 공부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식 대학 생활에 익숙한 필자에게 이들을 대하는 것이 처음에는 녹록지 않았다. 서로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지라 강의 시간에 학생들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떠드는 소리에 인상을 쓰면 ‘저 사람 왜저러지?’ 하는 눈으로 잠시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가 하면 리포트는 아주 성실히 해온다. 그렇게 잘 노는 친구들이 또 언제 그렇게 공부를 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한마디로 그들은 잘 놀고, 잘 공부하며, 잘 산다.

이런 외국 청년들을 볼 때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들에 비해 한국의 청년들은 노는 것과 너무 담쌓고 지내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어린 나이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부대껴온 그들은 인생을 마치 전쟁 치르듯 살아가는 것 같다. 오직 공부로만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그들의 삶의 방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균형 잡힌 식단에서 건강한 심신이 완성되듯이, 잘 쉬고 잘 놀아야지 일도 공부도 더 잘해낼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는 제대로 쉬고 열심히 노는 연습도 시도해보는 게 어떨까?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 수명으로 100살까지 바라보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100년을 날짜로 계산하면 3만 6,500일이고, 스무 살이 100살까지 산다고 치면 앞으로 2만 9,200일을, 스물다섯 살은 2만 7,375일을, 서른 살은 2만 5,550일을 더 사는 셈이다.

그 장구한 나날을, 지금처럼 진전한 휴식과 ‘흥’이 없는 ‘반쪽짜리 삶’으로만 살아가야 한다는 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당부컨대 지금부터라도 나머지 반쪽짜리 삶을 찾아라. 교재가 아닌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인생을 즐길 거리를 끊임없이 탐색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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